“필요한 만큼만 갖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사슴 사냥을 할 때도 가장 훌륭하고 멋진 놈을 잡아선 안 된다. 그중 작고 느린 놈을 잡아야지. 그러면 사슴들은 더욱 강해지고, 그래서 늘 우리에게 고기를 마련해 주게 되지. 표범이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너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자연의 이치를 지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소리내어 웃으셨다.
“그런데 꿀벌만이 저한테 필요한 것 이상을 모아둔다. 그러니까 결국은 곰이나 사람한테 꿀을 빼앗기고 말지. 인간들 중에도 그런 자가 있다. 제 몫 이상을 저장하고 저 혼자만 잘 먹고 지내려는 자들이지. 결국은 빼앗기기 마련이야. 그 때문에 전쟁도 하게 되고… 그들은 필요도 없는데 제 몫 이상을 차지하려고 별별 허튼 소리를 다 늘어놓는다. 또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자기가 더 많이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사람들은 그런 명분과 허튼 소리 때문에 목숨까지 잃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다고 해서 자연의 이치가 바뀌어지진 않아.”

“할아버지, 나가지 못하게 막는 문도 없는데 왜 저것들은 머리를 낮추고 기어나오지 않을까요?”
내가 묻자, 할아버지는 구덩이 안으로 한껏 팔을 뻗어 연신 꽥꽥거리며 난리를 치는 큼직한 산칠면조 한 마리를 끌어냈다. 가죽끈으로 그 놈의 다리를 묶은 다음 할아버지는 날 쳐다보며 씩 웃으셨다.
“이 늙은 산칠면조는 어딘가 사람을 닮은 구석이 있지. 이 놈들은 제가 뭐든지 다 안다는 듯이 생각하고는 고개를 낮추어 제 주위를 살펴보려고 하는 법이 없어요. 언제나 목에 힘을 주고 뻣뻣하게 대가리를 치켜세우고만 있으니 무얼 알 턱이 없지. 그렇게하고 다니자면 그 머리가 여간 무거운 짐이 되지 않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류시화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