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책을 처음 접한건 중학교때 였던거 같다.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었는데,
숙제 였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읽으라는 것.
그래서 처음으로 무소유라는 책으로 법정 스님을 접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놀기 바쁜 나이고 이해력도 부족하고 건성으로 대충 읽다 말았던거 같은데,
어느덫 20살이 넘고 다시 한번 읽고 싶은 마음에 무소유를 다시 읽었다.
책 속에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기억 나는 이야기 중에 하나는,
스님이 어느날 화분을 하나 가져와 집에서 기르기 시작했는데,
그 화분에 꼬박꼬박 물을 줘야하고 이것저것 신경 쓸게 많아서 여간 피곤하다는 거였다.
집을 비우고 싶어도 물을 안주면 금방 시들어 버리니 마음데로 어디 나갈수도 없게되고…
결론적으로 물질을 많이 더 많이 가질수록 물질에 구속된다는 그런 이야기.
무소유를 읽고나서 내 생활에도 하나의 작은 변화가 생겼다.
가끔 새로운 기계 같은 것을 사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서 산 것이니,
기스날까 조심스레 쓰고 혹여나 떨어뜨리게 되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서 샀는데 왜 돈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아야하지? 라는 식으로…
미국와서 법정 스님의 책을 다시 접하게 되었고 정말 아끼는 책이 되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맑고 향기롭게”, “일기일회”
두번씩은 읽은거 같은데 훨씬 더 많이 읽어야 될거 같다.
책을 읽으면서 불교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용어도 어렵고 크게 마음에 와닿진 않는다.
사실 종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기에.
하지만, 류시화 시인이 말한 것처럼…
“여느 책처럼 그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고 덮어 버리기에 어울리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끝까지 읽지 않아도 옆에 오래 놓아두어야 할 책이다. 내 방은 많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법정 스님의 책 만큼은 그 숫자에 포함하고 싶지 않다. 그의 책들은 한권의 책으로서가 아니라 늘 하나의 도반으로 곁에 있다. ‘법정’이라는 이름이 그 자체로 산이고, 오두막이고, 청정함이며, 어디에도 걸림 없는 자유이기 때문이다.”나 역시 법정 스님의 책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옆에 오래 놓아둘 것이다.
가끔 머리가 복잡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때면 법정 스님의 책을 펼치게 되는데,
어느순간부터는 내 삶의 나침반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잘못된 나의 생각을 일러 주기도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일깨워 주기도 하고,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나무처럼
새싹을 틔우고
잎을 펼치고
열매를 맺고
그러다가 때가 오면 훨훨 벗어 버리고
빈 몸으로 겨울 하늘 아래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
새들이 날아와 팔이나 품에 안겨도
그저 무심할 수 있고,
폭풍우가 휘몰아쳐 가지 하나쯤 껶여도
끄덕없는 요지부동.
곁에서 꽃을 피우는 꽃나무가 있어
나비와 벌들이 찾아가는 것을 볼지라도
시샘할 줄 모르는 의연하고 담담한 나무.
한여름이면 발치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워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쉬어 가게 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덕을 지닌 나무……
나무처럼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저것 복잡한 분별없이
단순하고 담백하고 무심히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